밤도깨비와 성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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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밤도깨비와 성주신

by 성봉수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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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성한 여자가 풀어헤친 앞섶처럼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려 있고 현관 앞 외등부터 부엌까지, 불이라는 불은 발인 전날의 상갓집처럼 환하게 켜 있다. 온 동네가 떠내려가라 울려 퍼지고 있는 서재 컴의 음악.
 거실문 앞에 매미 허물처럼 놓여 있는 반 바지.
 '이런...'

 우체국 화단에 질기게 뿌리내린 지피식물. 뿌리가 어찌 깊게 내리는지 몇 번을 실패했다가 마침 비가 오니 술밥 마무리한 중식당에서 슬쩍 들고나온 젓가락 한 짝으로 열심히 후벼 파 몇 포기 캐오느라 흙물이 든 흰색 반바지.
 얼른 물에 담가 놓는다는 게 그냥 잠들었던 모양이다.


 습관처럼 담배를 물며 마주한 폰, 9:13분 후배로부터 도착한 부재중 전화. 세 시가 막 지나고 있으니 이쯤이면 충분하게 잤다.
 컴의 음악을 줄여놓고 캐 온 지피식물을 화분에 이식하고 반바지 빨랫비누로 주물러 가루비누 푼 물에 담가 놓고 물 좍좍 뿌리고 들어와 현관 앞에 모기향 펴 놓고 커피 타서 서재에 들었다.


 그제야 번뜩,
 '아, 내일 잡부 있지...'
 첫끼이자, 유일한 끼를 술밥으로 해결했더니 술독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다. 겉으로 보이는 형편이 이러니 속도 마찬가지일 텐데 잡부 일정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조금 더 잠을 불러야 맞을 일인데, 그러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모처럼 물 구경 시키느라고 닦아 찬장 물받이에 올려 두었던 찻잔 받침. 습관대로-삼월이 언니께서 어쩌다 음식 나눔을 하면 많고 많은 접시를 두고 꼭 이 찻잔 받침으로 덮어 놓는다. 행여 이라도 빠질라 애지중지하는 내게, 그 꼴이 비기 싫어 아예 손 타지 않게 서재 책상에 붙박이로 놓고 쓴다-커피 탄 찻잔만 들고 들어 온 지 이틀. 찻잔과 받침이 만나는 달그락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싱겁고 맛없다. 벌떡 일어나 찻잔을 챙겨 들어왔다.

 좋은 음악, 깊은 담배, 찻잔의 가벼운 달그락거림...
 이 깊은 밤의 내가 모자랄 것 없이 행복하다.


 샘에서 바가지로 좍좍 물 뿌리며 문득, 어느 해인가 어머님께 정 읽는 말씀을 드렸더니 하신 말씀.
 "내가 잘 눌러 놨으니 괜히 쇳소리 내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때마다 치성이나 드리면서 잘 모시고 살거라"
  '그 덕분에 지금까지는 별 흉한 일 없이 잘살고 있는데, 오밤중에 대낮처럼 환하게 불 밝혀 놓고 월하에 공동묘지도 아닌데 호미로 땅을 파고... 우리집 성주대신이 화나신 건 아닌지 모르것다. 대주가 반 무당에 고약한 놈이라 성주신 눌러가며 살고는 있지만, 내 대에서는 안팎으로 이렇다 빌지도 않고 고사떡 한 번 고인 적 없으니 물렁한 우리 아들 대에도 이 대감님을 잘 누르고 살지 모르것네...'

 

 
 202308230608수
 정 읽는 소리-2021

-by,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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