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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에게˚ / 성봉수
안나,
당신이 오른 기차가
사신의 채찍처럼 어둠을 찢으며 떠나갔습니다
나는 빈 플렛폼에 서서
황량한 어둠의 끝을 한동안 바라보았어요
안나,
사악한 혀를 날름거리며 무한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검은 뱀을 보세요
열차는 절망으로 추락하는 당신을 기다려요
조바심의 끈끈한 타액으로 운명을 핥아 눈멀게 하고
신기루 같은 설레임을 꼬드기고 있어요
야금야금 그 꼬임에 빠져 사신의 제단에 벗은 몸을 내어줄까?
뱀의 음흉한 박동이 자지러들고서야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안나,
나는 당신의 내일을 열차의 궤도 위에 정확하게 포개어 놓고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하나가 되며 늘 어긋나기를 바라요
어느 쪽도 따라잡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안나,
나는 빈 플렛포옴에 서서
황량한 어둠의 끝을 한동안 바라보았어요
그러면서
레일에 몸을 던질 만큼 가깝지 않은 오늘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대, 안나 카레니나.
다시는 설레임의 플렛폼에 서성이며
뱀의 교활한 혓바닥에 옷 벗지 마세요
˚ 톨스토이의 소설 :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201509142602월
■ 시집『바람 그리기』에서■
-김범용(김학성 색소폰) '밤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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