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기억, 명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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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울의 기억, 명수 형.

by 성봉수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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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어디야? 시간 돼? 온 김에 얼굴 보고 싶어서..."

 서둘러 잡고 있던 원고 마무리하고 약속한 로터리 금광당 앞에서 만나 찻집에 앉았다.

 변함없는 모습.

 짙은 보라색 정장.

 살아온 이력을 대변하겠지만, 감히 누가 이런 복장을 소화할 수 있을까?

 

루비가 박힌 금장 시계.

주먹만 한 반지.

 화려한 꽃무늬 타이에 셔츠와 색을 맞춘 포켓 스퀘어는 가히 화룡정점이다.

 이런 코디를 한 형수나, 소화하는 형이나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만,

깊게 파인 주름이 천박하기는커녕 멋스럽다.

나도 저 나이 때까지 저렇게 건강하고 당당할 수 있을까?

16년 후에 거울 앞에 서면 말이다.

 


 c시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형과 헤어져 모기향과 담배를 사고,

 싸전 입구 탁주 집에 홀로 앉았다. 

 일부러 술을 먹으러 집을 나선 것이 아니니, 뒤통수로 쏟아지는 혼술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면죄부가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혼자 그렇게 술을 빨고 자전거에 매달려 집으로 돌아 티브이 앞에 앉았는데, 몸이 힘들다.

 '픽' 쓰러져 남의 정신으로 잠들 정도로 취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등 곯는 민초들에게 구황식이 되던 시절을 생각하면 석 대 막걸리면 며칠을 공복으로 보내도 황송할 일인데, 몸이 힘드니 당장 내일 아침의 숙취가 겁이 난다.

 경험상, 속에 뭔가를 넣어주어야 내일이 편할 텐데. 물에 말아 푸욱 불린 밥이라도 한술 뜨고 싶은데, 밥 뜨러 건너 채로 왔다 갔다 하기도 뭐하고. 

 궁리 끝에 초코파이 한 개에 김 빠진 오란씨 한 모금을 헹궈 넘기고 방에 들어가 자리 잡고 누웠다.


 "심심하다"

 풀리지 않던 의문에 던진 간단명료한 답을 잡고 잠이 들고 깼다.

 깨어나 담배를 먹으며 곰곰 생각하니, 아주 오래전 마주 섰던 [거울]이 생각났다. 거울이고자 했던...

 어쩌면, 그 사람은 지금 그 거울 앞에 서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푸념으로 마주 서는 거울이 되기엔, 

지금의 나는 명징하지도 여유롭지도 청아하지도 않게 혼탁하다.

단절의 시간은 나를 이만큼 물러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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