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 냄새 가득한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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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밤꽃 냄새 가득한 마당에서

by 성봉수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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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나리는 마당.
읽던 책을 엎어놓고 현관문을 열자 밤꽃 냄새가 진동한다.


이 빗속의 도심에, 어디서 찾아 나선 그리움일까?
왠지 정갈해져야 할 것 같은 마음.
샘에 나가 더께 같은 포기의 망각을 뿌득뿌득 씻고 들어왔다.
거울 앞에서 물기를 닦으며, 내 동공 저쪽에 갇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름을 어루만진다.

커피를 타 참선하듯 침묵한다.
귓불을 떠도는 행길의 소음...
그 모두가 산중의 새소리 바람 소리 휘도는 빗방울 끝에 머문 풍경의 느린 울림만큼 평화롭다.

며칠 전,
외출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잠시 멈춰 바라보던 그 호수의 바람 소리를 떠올린다.


책 한 권 들고 삶은 감자 두 덩이를 점심으로 챙겨 집을 나서고 싶었던 아침.
어쩌면 이렇게 다가와 망각의 앙금을 뒤흔들어 놓을 밤꽃 냄새를 피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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