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는데 피부와 입술로 분열된 경계의 턱이 뜨끔하다.
'쪼르르...'
맑은 피가 흐른다.
사춘기 무렵.
이상하게 자주 쥐가 났다.
어떤 때는 멀쩡하게 잠을 자다가 갑자기 다리가 올라붙었는데...
"내가 너 배서 그렇게 쥐가 자주 났는데 너도 그렇구나... 다른 사람들은 뱃속에서 한 첩씩이라도 보약을 얻어먹었는데, 너 때만 못 먹었어. 그래서 그런지..."
쥐약병을 준비해 놓고 낳은 여섯째가 나였으니 태중에 보약을 못 얻어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으나, 다섯째인 바로 손위 누나에 대한 기억이 문드러졌다. "남동생 보면 빨간 구두 사주겠다"라고 했다던 정황상으로는, 손위 누나도 태중 보약은 언감생심이었던 것 같은데, "약주 드신 할아버지께서 섭골 본가로 올라가시기 전, 약 한 첩 건내주시고 가셨다"라던 어머님 말씀의 당사자가 그 누님 같기도 하고….
베어도 참 애매한 곳이 베었다. 일회용 면도기, 버릴 때가 된 것이라서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했을 때의 여지 없는 증상.
늙는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 참 비참한 일인데,
안으로 둥글게 말고 혀를 끼워 넣어 돌출시킨 아랫입술에 닿아 있는 면도기를 쥔 손에 눈이 가 있었지만, 생각은 내 기억의 화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러할진대, <물아일체(物我一體)>란 닿는 길이 얼마나 요원한 무색의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일일까?
왜 많고 많은 생각 중에 <다리에 나던 쥐> 혹은 <보약>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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