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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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모과 하나.

by 성봉수 202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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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 속의 모과는,
 왕성극장 골목 끝, 요정 "다정"의 왜식 울타리를 훌쩍 넘은 거기.
 거기에 손 가는 이 없이 가지가 휘도록 까맣게 달려 있던 홍등(紅燈).
 
  내 기억 속의 모과는,
 떵떵거리던 양조장집 외손녀 어머님.
 어머님께서 삐지고 저며 말 통으로 담가놓던 술.
 권주(勸酒)가 배려고 영광이었던 시절의 다섯 사위를 위한 보약.

  내 기억 속의 모과는,
 투박하게 남긴 순간의 드로잉이거나, 청명한 수채화이거나, 덧대거나 감춰 각각의 햇살을 섞어 놓은 유화.
 그 모든 정물의 부속물.

 그런 모과가 자꾸 눈에 밟힌다.
 가을 끝, 어디 거기서 채 마르지 않은 꼭지를 비틀어 가져다 놓은 못생긴 모과가 눈에 밟힌다.
 앉아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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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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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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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린 커피를 들고 부엌을 나설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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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는 것 같이 점점 내 곁에 있는,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은 못생긴 모과 하나가 자꾸 여기 있다.
 누구인지 모르나, 꼭 누구 같은.
 성에 낀 창을 긁어 멀어지는 이별의 마차를 바라보던, 지바고의 그 간절하던 입김 같은.

 모과 하나가...
 미지근한 물에 담겨 죽음도 모르고 데워지고 있는 미꾸라지같이,
 자꾸 내 안으로 익는 모과 하나가...

 

 
 202311292320수
 닥터지바고-라라의 테마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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