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에 달팽이 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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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무릉도원에 달팽이 납시다.

by 성봉수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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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수초가 활착에 실패해 녹아버려(₩3.000) 다시 구입해 이식한 수초(₩9.000).

 자고 나면 눈에 띄도록 움쑥움쑥 버는 모습이 기특하더니, 근래 들어 줄기가 녹아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하다?'

 어항을 큰 것으로 새로 사는 바람에 이전에 쓰던 조명이 광합성하기에 조도가 모자라는가 싶어 어항 크기에 맞는 크기로 새로 장만했고, 산소 발생기도 새로 주문해-다이소에서 ₩3.000짜리 중국산 저가 상품을 사 사용했더니 소음이 어찌 심한지 경운기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그도 그렇지만, 소리 자체도 불규칙하게 자꾸 변하니 혹여 불이라도 날까 외출 때마다 불안하던 차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물멍 중에 어항 유리에 붙어 있는 깨알 같은 것에 무심코 눈이 간다.

 '뭐가 묻었지?'

 아무 생각 없이 안경을 벗고 자세히 살펴보니 미동이 느껴진다.

 

 

 

 '이게 뭐여? 잘 못 봤나?'

 껍질조차 아직 쓰기 전인 투명한 모습이지만, 지느러미 두 개가 슬슬 움직이는 것이 틀림없이 달팽이다.

 

 

 

 '어랏? 여태 없던 달팽이가 갑자기 어디서 생겼댜?'

 어항에 새 식구가 생긴 것이 반갑다. 이놈들 먹이가 골치 아픈 이끼가 될 터이니 더 반갑다.

 ...라고 착각했던 것도 잠시.

 마당에 심어 놓은 작두콩 새 순을 밤마다 갉아먹던 놈의 정체가 달팽이였다는 사실이 반뜩 떠올랐다.

 

☆~ 詩와 音樂 ~☆

성봉수 詩人의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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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이놈들이었구나. 그렇게 잘 자라던 수초들이 시름시름 녹아가는 것이 이놈들 때문이었구나!'

 부랴부랴 검색하니 역시나다.

 다이소에서 <달팽이 제거제> 진열품을 본 듯한데, 사용하고 있는 <이끼 제거제>가 별 효과가 없으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포탈에서 기웃거리니 구충제 <젤콤 현탁액>을 사용해 해결한 포스팅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병원으로 약국으로 볼일이 있던 참이었으니 제품명은 다르더라도 같은 성분인 태극제약의 <훌벤> 현탁액(₩4.000/4봉)을 사다가 한포를 물에 희석해 과감하게 풀어 넣었다.

 

 

 

 '반 봉 만 넣을 것을 그랬나?'

 순식간에 어항 전체가 흰 물감 뿌려 놓은 듯 오리무중으로 바뀌어 버리고 고기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니 은근 걱정이 앞선다.

 '여태 잘 키워 온 놈들 다 쥑이는 거 아닌지 모르것네....'

 

 

 

 그래도, 약제가 퍼져나가는 잠시 동안 상상 속의 무릉도원을 황홀하게 마주했다.


 하룻밤 지내고 나니 물 빛은 조금 옅어지고, 물괴기들은 이상 없이 밥 달라고 입을 뻐끔거리니 다행이다.

 약제를 잡수신 깨알 만한 달팽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니, 여태 어디 있었는지 모르것다. 매일 물멍을 했으면서도 그 존재를 알 수 없었으니 눈 뜬 장님이 내 꼴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인간임을 새삼 자각한다.

 

 밑동이 녹아나간 수초는 이미 회복불능인 듯하고 달팽이 구충이 되었다 싶으면 조만간 새로 사서 이식해야 할 듯싶다.

 

 <순수 국내 제작>이라는 무소음 기포 발생기가 일주일 만에(요즘 세상엔 신기한 일이다) 도착했는데, 배송 기간이 오래 걸린 것과 생각보다 어마무시한 덩치를 빼면 성능은 기대 이상으로 조용하고 기포도 힘차서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외출 때마다 불안하던. 그래서 코드를 뽑아 놓고 나가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자동 급식기>도 사놓았고, 이젠 부담 없이 며칠 훌쩍 길 떠나도 될 일인데...

 다음 달 중순에 병원 예약을 잡아 놓았고, 겨울 오기 전에 이것저것 집 안일 마무리할 것도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이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느낌대로 길을 나서고, 어떤 이는 꽃 피고 지고 낙엽 지고 눈이 쌓이도록 지도책만 붙잡고 있다 세월 다 가고.

 사는 게 각자의 역량대로 지지고 볶으며 만족하는 일이지 싶다. 

 

 

 

 이 음악, 얼마만에 듣는 지 모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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