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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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리움의 나신

by 성봉수 202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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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뎅나베에 따끈한 사케 한잔하고 싶은 날.
 손님을 끌 만한 상점들은 대학가와 인접한 철도 건너 아파트촌으로 옮겨간 지 오래인 데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고 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썰렁한 구도심 어느 곳도 마땅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철도 건너까지 꾸역꾸역 건너가 혼자 청승을 떨(만한 적당한 곳도 사실 없지만….)기도 귀찮고.
 불연, '내가 사는 곳이 대도시였다면 이런 영양가 없는 고민이 필요 없을 텐데….'라는 생각.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나 보다.

 궁리는 시간만 잡아먹어 벌써 자정을 넘겼다.
 길 건너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 어묵탕 두 팩과 좋은 술 한 병을 챙겨와 곰돌이와 마주 앉았다.


 청하를 들었다가, '정종이면 어머님 제사 모신 퇴주가 잔뜩 한데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어 <15년 숙성>이라는 매실주로 바꿨다.


 <8,000원>
 몇십만 원짜리 와인도 아니고, 식당에 앉아 소주 두 병을 먹는 셈 치면 되는 일이니 내게 주는 선물쯤으로 여기고 고민할 것 없다.

20211023토상강   


 후닥닥 탈고해 보낸 밀린 시 두 편.
 이번엔 그 빠져나간 생각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와 한밤의 사케가 필요할 만큼 허기졌다.

 뭉텅 빠져나간 그 무엇의 구멍이 급작스레 커져 우울의 싸늘한 바람이 몰려든다.
 금기의 문고리를 잡아당긴 듯도 싶고... 이 잦아들지 않는 바람에 오늘도 술이 필요하지 싶다.
 서재 창밖,  바람종만 간간이 울고 있는 오래된 마당의 하늘은 을씨년스럽게 내려앉았다.

 가을이다.
 보아주는 이 없는 어느 골에도 움쑥움쑥 탈색되고 있을 지난 계절의 흔적들.
 내 그리움도 따라서 점점 나신이 되어간다.

 

 

 202110241705일
 미소라히바리-오사까의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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