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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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미국 돼지.

by 성봉수 202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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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그럽게 더웠던 날.
 종일 물을 먹었어도 밤늦도록 가시지 않는 갈증.

 

 


 잡부 일당 마치고 돌아와 마당 샘에서 쉰내 나는 몸을 씻는데,
 '어이쿠나!'
 수건 챙겨 오는 것을 깜빡했다.

 사위가 쨍쨍한데,
 빨랫줄에 걸린 수건 떼느라 알몸 행차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땀에 전 찝찝한 옷을 도로 입고 나설 수도, 물 묻은 몸으로 새 옷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낭패다.

 

 


 마침,
 옆방 아줌마 퇴근시간이니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자.
 평소보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대문 열리는 기척이 없다.
 예라이, 모르것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서 있다가 알몸으로 잽싸게 나서 수건을 챙겨 샘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얼추 10분 남짓 그렇게 엉거주춤 서 있자니,
 '옆방 아줌마건 건너 채 아줌마 건, 알몸으로 서서 수건 챙겨달랄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밖엔 없다는 슬픈 현실이여...'

 


 그나저나,
 "장 보러 나갔는데 '아가씨!'라고 불렀다"라며 좋아하던 날씬한 저 새댁은 어디로 가고,
 미국 돼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건지.

 

 

 
 이장희 / 그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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