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술을 넘기다가 아버님 유품 시계를 들고 밥을 준다.
"동철이가 '시계 밥 주고 자야 해요'라고 하면서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서더라. 어쩌면 어린애가 그런 것도 잊지 않고 챙기는지 기특하더라"
서울, 약국 큰 이모 아들 동철이.
그러니까 내 이종사촌 동갑내기의 무용담을 외할머님께 건네들은 말씀을 내게 하신 어머님.
"너도 그럴 수 있겠어?"
'어마마마, 시계가 있어야 밥을 주지요!'라고 속엣말로 대답했지.
"주환네 애들은 하루에도 구판장을 몇 번씩 드나들며 주전부리하던데, 니들 애들은 어쩌면 한 번도 그러지 않고 어쩌면 그리도 점잖니?"
큰 외삼촌의 아들 주환이 형.
그러니까 내 외종사촌 형.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던 큰 외삼촌 아이들과 나와 동생이 방학을 맞아 모처럼 할머님 댁과 외할머님 댁에서 만나 며칠을 보냈는데, 이 외종 세 남매는 동네 입구 막걸릿집에 붙은 구판장에 수시로 우르르 몰려가 입에 뭔가를 물고 돌아오곤 했는데, 나는 자존심 지키느라 쩝쩝거리고 먹는 걸 못 본 척 애써 외면했지.
외할머님이 하신 "점잖다"는 칭찬을 건네시며 흐뭇하게 웃으시는 어머님.
'어마마마, 돈이 있어야 뭘 사 먹으러 가지유!' 속엣말로 대답했지.
목화솜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던 동철이는 가업을 이어 약사가 되었고,
주환이 형은 종갓집 산과 전답 물려받아 형제들과 나누고도 세금 걱정하는 땅 부자 되었고,
껌딩이라 놀림받던 본토 촌놈 봉수는 시인이랍네 밥벌이도 못 하고...
명실공히 남남인 우리 집 아이들은,
"아바마마!"의 속엣말을 얼마나 하며 살고 있는지...
임교순 작사 이수인 작곡/방울꽃
그 무렵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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