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뒤통수 스파이크 "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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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우리 아빠, 뒤통수 스파이크 "빡!"

by 성봉수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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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가는 책들이 부담스럽다가도 읽을거리가 많다는 사실이 새삼 든든한 포만감을 부른다.
 현찰이 두툼하게 든 지갑을 챙겨 반가운 사람과의 술자리로 향하는 걸음걸이 같다.
 그래서 오늘은 책을 읽는 날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음악을 틀어 놓고 책장을 넘긴다.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언제 들어오셨는지 아버지께서 등 뒤에 서 계신다. 언제부터 서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풍겨오는 술 냄새를 보니 틀림없이 서 계신다.
 "음악을 틀어 놓고 무슨 공부를 햐 인마!"
 '저는 틀어놓고 해야 잘 되는디유. 다들 그렇게 하고요...'
 잔뜩 주눅이 들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내게 아버지께서는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꺼!"
 "끄라고! 시끼러워 죽것어!"
 음악을 끄는 것을 확인하고 아버지께서 나가셨다. 당장 일어나 문을 (쾅!)닫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왜 방문을 못 닫게 하셨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_^%$%$#$~~'
 아버지께서 나가시고 이 부당한 상황에 대해 혼자 나지막이 구시렁거리는데, 뒤통수가 싸아하다.
 '뭐지? 이 불길한 기운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안채로 건너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께서 얼굴 반쯤만 드러내고 문밖에 몸을 감추고 지켜보고 계신다. 그 사실을 인식하기가 무섭게 다시 방안으로 출두하시더니 사정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기신다.
 "뭐라고 인마!"
 '...'
 '손 안 내려 새꺄! 공부한다는 놈이 턱을 괴고 무슨 공부를 햐!'
 이번엔 턱을 괴고 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뒤통수를 후려갈기신다. 눈앞에 별이 번쩍인다. 울대가 뻐근해지고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더 깊게 수그린다. 들켰다가는 "남자의 눈물론"을 꺼내며 또 뒤통수를 후려치실 거다.


 

 

 세상엔 공부보다 재미난 것 천지였고, 알고 싶은 것, 신기한 것이 더 많았다. 공부에 매달려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을 만큼 지질하지 않았으니 열심히 해야 할 필요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당신의 기대치에는 한참을 못 미쳤겠으니 그러하셨겠지만, 내 뒤통수는 아버지 것이었다.
 술이 거나하셔서 귀가하시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한심한 아들놈의 뒤통수에 강스파이크를 넣으셨다. 물론 사시사철 주야장천 그리하신 것은 아니었고 많아야 열댓 번 정도였을 것 같은데, 한참 예민한 시기에 맛보아야 했던 무너지는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의 기억을 대신하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얼마 전, 참고서를 산 후 실종되었던 학생이 스스로 세상의 끈을 놓았다는 안타까운 보도를 접했다.
 며칠 전 학업 문제를 놓고 아버지께 꾸지람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출의 동기가 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틀림없이 사고일 거라는 부모의 기대가 허물어져 버렸다. 어린 학생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는 또 다른 내면적 갈등이 있었겠으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우리 집은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까?
 어릴 적에는 "아빠"라고 부르는 옆집 노 씨네 식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에 생각하면 <아버지와 아빠> 그 같으면서도 다른 호칭만큼 노 씨네와는 관계의 출발점이 달랐지 싶다.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성에 난맥이 오죽했으면, 삼강오륜에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콕 짚어 규범으로 삼았을까?

 

 

 

 아버지께 뒤통수 스파이크를 맞으며 다짐했던, "친구같이 허물없는 관계"는 물론이고 "본이 되어 존경받는 아비"로도 살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현실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아빠"라는 호칭을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일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누님들 결혼식장 외에, 아버님과 찍은 사진은 저 사진이 유일하지 싶네.

 

 

 
 Wilhelm_Kempff_-_Beethoven-Piano-Sonata-No-17_in_D minor_Op31_No.2_-_Tempest_3_Allegretto_Alfred Brendel_DG_138_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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