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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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촌스러움을 위하여

by 성봉수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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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영에서 내려와 차를 돌리려는데 문득 보이는 꽃.
 코스모스다.

 

 


 코스모스꽃이 만개할 때면 하늘에는 으레 잠자리 떼의 군무가 한창이기 마련이니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지구 온난화로 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진 데다가 아무리 평지보다 평균기온이 낮은 산중이라지만,
 여름 장마가 시작도 하지 않은 초여름에 가을꽃이 피었다.
 언제부터인지 가을이라도 쉽사리 마주하지 못하는 형편의 꽃이 되다 보니 생뚱맞지만 반갑다.

 

 


 예전엔, 길가 어디에도 흔하게 피던 꽃.
 특히 추석 성묘 무렵이면 도로변 흙길에 군락을 이뤄 귀성객들을 반기던 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범 마을의 <동네 풀 깎기 작업> 희생양이 되어 모가지가 사정없이 잘려 나가고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에 자리를 내어주더니만, 지금은 풀 깎기가 <일자리 사업>의 한 종류가 되어 주기적으로 제초작업을 하다 보니 참 귀한 꽃이 되어버렸다.
 자치단체가 행사나 축제 등을 염두에 두고 유휴지 등에 인위적으로 재배한 곳을 찾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그런 꽃이 되어버렸다.

 

 


 수수하고 청초한 꽃잎.
 꽃필 무렵 아침저녁으로 맞이하는 그 기분 좋은 한기.
 꽃을 떠올리면, 산들 부는 바람과 꽃잎에 맺힌 이슬이 함께 떠오르는 꽃.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아도 해마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꽃을 피우는,
 유난스럽지 않고 당연하던 꽃. 있어도 있는 줄 모르던 마치 가족 같았던 꽃.
 그래서 촌스러운 꽃.
 우리 엄니께서 좋아하시던 꽃.



 흙길을 덮어 포도가 되고 그 포도 위를 능률과 생산성의 가치라는 고급 윤활유가 감정의 에누리를 간극 없이 차지하여
 매끄럽고 얍삽하게 돌아가는 세상.
 틀에 눌려 알맹이만 남은 각진 두부 같은 세상.

 헐렁헐렁 울퉁불퉁 촌스러운 것이 그립다.

 

 


김상희-코스모스피어있는길
우리 엄니 콧노래가 들리는듯 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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