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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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평행이론

by 성봉수 202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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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밤.
 취객의 발길도 끊긴 이 길의 북쪽 끝에 서서 담배를 먹으며, 소식 끊긴 옛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북쪽 끝 여기서 가까운 어디, 지금은 이름도 휘발한 그 분식점에 내가 주선한 소개팅에 나서면서, 셔츠 윗주머니에 거북선 담배를 호기롭게 꼽고 나갔던 친구. 그래서 "불량 학생"으로 보기 좋게 걷어차인 친구. 
 자리잡은 모든 곳과 상황마다 늘 유리(遊離)되어 떠돌던 부잣집 장남 친구. 알 수 없는 번호들로 어쩌다 안부를 물어오던. 생사불명이던 어느날, 오래전 가정에서도 유리되고 생보자 신분으로 알콜중독 치료소를 들락거린다는 풍문을 마지막으로 들은 친구. 자수성가한 부모님, 완고한 기대의 목줄을 버텨내지 못하고 떠돌이 개로 자유를 선택한 친구. 비루먹은 잡종 개 꼴로 어느 시장바닥 쓰레기통을 기웃거리지는 않는지. 이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는 외로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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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비 내리는 밤.
 광장에 서서 동쪽으로 난 길을 마주하고 담배를 먹으며, 이 광장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의 군상들을 떠올린다.
 타이어를 굴리던 차부 택시 조수들. 밤 손님을 호객하던 애꾸눈 아저씨. 구두닦이 형제. 지게꾼. 리어카꾼. 통운의 조랑말 구루마. 종선이 아저씨. 버버. 훈련소에서 나와 이송을 기다리며 따블백을 깔고 열 지어 앉아 광장을 가득 메웠던 군인들. 또 그렇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여기저기 둘러앉아 통기타를 치던 행락객들. 강원연탄 뒷길의 싸구려 여인숙들. 젖무덤이 온통 담배빵이던 그 계집아이...

 그리고 생각한다.
 내 지금의 모든 사유가 과연 온당한 나의 사유인가?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모든 시간을 나란히 걸어 온 또 다른 내가 나를 관음하고 있는 거라고.

 

 
 20231214목북진회
 김돈규-나만의슬픔
 2주만에 술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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