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에 혼자 울었을 부재중 전화와 그보다 앞서 여덟 시 오십 팔분에 도착한 sns.
그러니 똑 떨어진 시간이 최하 여덟 시 오십칠분이었다는 얘기인데...
묵힌 설거지 막 끝낼 무렵 전화 받았을 때, 때맞춰 쏟아지는 비. 덕분에 좀비 영화 속 군중 안에 숨어든 보균자처럼 유령 같은 자폐의 초췌한 나를 우산 안에 감추고 길을 걸어 작년 연말 이후 새해 들어 마주한 첫 술상.
아직 탄성계수를 회복하지 못한 쪼그라진 창자.
안주도 남기고, 칼국수 저녁상도 비우지 못하고, 차도 마시지 않고 우산 질질 끌며 귀가.
옷 갈아입고 이 벅벅 닦으며 서재 기웃거리다 오늘을 접으며 내려앉은 안방 난방텐트 안.
번쩍 눈 뜨니,
새로 네 시 반도 아니고 새로 두 시 반도 아니고 열두 시 반이다.
"낮여? 밤여?"
낮이건 밤이건 열 두시 반이라는 시간은 어중되다. 밤이라면 당연하고 혹 낮일지라도 밤일 상황을 생각해서 최하 두 시간은 버텨야 한다. 그렇게 다시 뭉그적거리다가 눈 뜨니 정말 새로 두 시 반이고 밤이다.
여덟 시 오십 분 무렵 sns에 도착한 광안리 드론 쇼 동영상과 연이은 부재중 전화를 보건데, 아홉 시 전에 잠에 떨어져 세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다는 얘기다.
무언가를 즐기는 흥취를 재미라 하면, 잠에 대해 들린 요즘의 재미는 참 특이하고도 엉뚱하기만 하다.
자리에 누우면 억지스럽지 않게 스르르 빠져드는 잠.
밤을 낮 삼아 살아온 내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굴종하거나 전의를 잃고 자의로 잠에 백기투항하는 이 생경하고도 신비로운 경험. 그 원인이 쇠잔한 체력이 야기한 당연한 결과이든 피폐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의식적 외면의 방법이든...
하고많은 것 중에 재미들린 잠.
내가 그려가고 있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이 예측 불가능한 싸이클의 마지막 그림은 어떤 모습일런지...
돛도 노도 없는 능숙한 공전(空轉)
뱅뱅 맴돌다
언제나처럼 반푼이처럼 웃고 말 일이다
그래도 지금은 어지럽다
내게서 비켜난 지축 위를
동짓달 마지막 밤을 잡고 출렁이고 있다
▣ 시집 『바람 그리기』중 「뗏목」에서 ▣
상큼하고 명쾌한 뭔가가 간절한 밤.
부엌에서 잠시 서성거렸지만 선택지는 김빠진 콜라뿐.
결국 커피를 타 들어왔다.
202401040440목
함중아-이밤이새면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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