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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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어둔 便紙

고맙습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by 성봉수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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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참 질기게도 오셨습니다.
 해마다 겪는 장마지만, 며칠을 멈춤 없이 내리는 비는 처음 경험해 봅니다.

 지척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늘 오가는 길이니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 살고 죽는 것이 참 찰나의 일이구나 새삼 생각했습니다.

 주검을 수습할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 잠깐 비가 멈춘 낮.
 맨몸을 면하려고 걸치고 사는 망사조끼 터진 곳을 꿰매고, 때가 꼬잘 거리는 칠 부 냉장고바지와 함께 빨아 널었습니다. 그러고는 우산을 챙겨, 어제 도중 비가 너무 많이 와 포기하고 돌아섰던 물 구경을 나섰습니다.

 시내와 천변 산책로를 연결하는 우회도로 위 육교.
 <출입 금지> 로프를 들추고 올라섰습니다.

 지금은 우회도로가 되어 있는 다리 아래 예전 제방 길.
 장마가 멈추고 나면 시내 사람들 모두가 벌 떼처럼 모여들어 물 구경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갈고리를 매단 로프나 장대로 떠내려오는 이것저것을 낚아채는 능력자들을 바라보며 탄성도 지르고 내 일처럼 박수치며 신나라 하던 곳입니다.
 예전에는 심심찮게 돼지도 떠내려오고 했는데, 쉼 없이 계속된 비에 떠내려갈 것은 이미 다 떠내려간 모양입니다.
 저만치 충북 오송과 연결되는 다리 교각 모가지까지 황토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보면, 비가 많이 오기는 했습니다.

 이 상태로 며칠 더 계속 비가 왔더라면 내 사는 곳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산책로로 내려서 지류가 합쳐지는 여중학교 쪽으로 슬슬 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여중 뒤쪽 지류가 합쳐지는 곳은 산책로까지 물이 찼다가 빠졌고 그마저도 일부분이고 나머지 길 대부분은 아직도 물이 차 길이 끊겼습니다.
 물이 들어왔다 빠진 곳은 온통 고운 토사가 쌓여 마치 뻘밭인 듯합니다.

  "미끄덩"
 발꾸락에 힘을 줘 슬리퍼를 꼭 잡고 살살 걷는데도, 10미터 남짓 걷는 동안 예견할 수 없이 몇 차례 휘청거렸습니다. 쭉, 미끄러져 퐁당 이라도 하는 날에는 골로 가는 일이니 조심조심 여중 쪽 제방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이후로는 물에 잠겨 길이 끊기기도 했고요.

 운행 시간을 기다리는 듯 길 한쪽에 회사 버스를 정차하고 엔진 드로틀을 요란하게 올렸다 내렸다 하는 아저씨. 뻘건 황토가 콸콸 흘러가는 제방 아래서 어떤 미침 놈이 쑥 올라오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차창 밖으로 빼고 의아한 눈으로 뒤통수가 뜨거워지도록 나를 바라봅니다.

 떠내려오는 돼지 건지러 갔다가,
 그래도 차 한 대는 건져서 왔습니다.

 분해해서 닦고 기름 쳐서 잘 모셔뒀습니다.


 '아이고 배고파... 밥 먹어야지' 생각하는 순간, 술청 전화를 받고 나갔습니다.
 빈속에 오른 취기를 끌고 터벅터벅 돌아왔는데 대문이 잠겼습니다.
 삼월이가 죽을 듯이 짖고 대문을 향해 달려 나오는 모습을 문틈으로 바라봅니다. 저 안쪽 마당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누군가 깨어 있는 모양입니다.
 '삼월아, 얼른 가서 문 열라고 햐!'
 바랄 걸 바라야지. 괜히 아는 척을 하고 나니 더는 짖지 않고 궁딩이를 대문 쪽으로 뒤돌아서 대가리를 돌려 바라보며 꼬리만 흔듭니다. 삼월이에게 몇 번 더 중얼거리는 사이 안쪽 마당에 비치던 불이 사라졌습니다.
 '염병,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지, 나 몰라라 잠수네?'

 '하이고, 힘들다...'
 대문 앞에 놓인 벽돌에 털썩 주저앉아 '누군가 한 명은 나오겠지...' 부질없는 기대를 하며 생각했습니다.
 '지금이 겨울이었다면.. 내가 월장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이런 기대를 하며 이렇게 앉았다면... 별수 없이 선화네 큰오빠처럼 되는 걸텐데...' '하필이면...' 동네 사람들이 혀를 차던 그 주인공이 되는 거겠구나.

 누구에게 전화할까?
 기다림을 포기하고 뚤레거리다 가장 늦게까지 깨었을 확률의 주인공 아드님께 전화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닦고 쪽 뻗었습니다.


 술잔을 함께 들던 친구.
 멀리서 사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 받았더니 그냥 뚝 끊더랍니다.
 ㅎㅎㅎ

 지하차도에서 불귀의 객이 된 건 아닌지, 에둘러 물어 오신 영업부장님.
 그리고 목사님.
 아직 잘 살아 있습니다.

 상처로 기억 되는 이름이 되지 말고, 살다가는 날까지 다 같이 가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07171759월
미소라히바리(美空ひばり)-흐르는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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