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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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어둔 便紙

열무김치.

by 성봉수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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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
 옥상 올라가 비설거지하고 내려와 털갈이로 집안 천지에 날리는 삼월이 털 쓸면서 문득,
 "누님 허망하게 떠나신 지 올해 만 10년이네... 내가 얼추 그때의 나이에 닿았고..."
 (그제 어금니 하나를 사망 통보받고 발치 날을 잡아 놓았겠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사람 목숨, 오고 가는 게 참 별거 아닌데... 6월이 다 가도록 열무김치 한 번 맛보지 못한 독거노인이 측은하다는...
 시간은 밥때가 훨씬 지났어도, 생각난 김에 비 오시기 전에 장에 다녀와야겠다. 집을 나서니 멀리 사거리 노변에 천막이 보이는 것이 마침 장날이다.


 "열무를 귀경을 못 혀유!"
 지난 어느 장엔가 한 단 3,000원 하는 것을 보았는데, 파장의 삐들 거리는 열무를 5,000원에 비닐봉지에 담아 넣으며 노파는 혀 차는 소리를 한다. 어떤 연유든, 겁나게 올랐다.
 어머니 계실 때처럼 두 단을 담아 건너 채에 덜어줄까? 생각했다가 부질없다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했다.


 마트에 들러 양파와 하품 쪽파 한 줌과 담배 사서 돌아오는데 뒤통수가 뜨겁다.
 해 떨어질 무렵이니 조급한 마음에, 알몸에 젖꼭지 훤히 보이는 망사 조끼 걸치고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칠 부 냉장고바지에 발등이 반은 앞으로 삐져나오는 커다란 슬리퍼 끌고 집에서 입은 그대로 불난 집에서 튀어 나가다시피 나갔더니 행색이 볼만했음이렷다.

 감자 전분으로 풀 쒀서 식히는 동안 다듬어 소금에 절구고, 간 맞춰 멀국 넉넉하게 담아 익으라고 부엌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자작하게 담아 아작아작 잘 먹고 있는 양배추 물김치도 있으니, 이만하면 귀또리 울음 들릴 때까지 혼자 넉넉하게 먹지 싶다.


 저녁 늦게 어제 헤어진 친구에게서 전화가 울린다. 잘 도착했는지 안부 전화려니 받았더니,
 "우리 아들이 혜화역 스크린 도어에 쓰여 있는 시를 보았는데, '이 아저씨 아빠 친구 아니냐?'"라고 물어 왔다며, 왜 알려주지 않았냔다.
 '응... 뭐... '

20230623 천안 일봉공원 일원에서 좋은 친구들과

 육두문자를 스스럼없이 건네도 정겹기만 한 좋은 친구들.
 은퇴 이야기와 여기저기 고장 난 삭신 얘기가 대화의 주제로 변했고 한 친구는 벌써 회갑 여행을 다녀왔단다.
 참...
 언제 전부 할배가 되어버렸는지 원...

 

 
 202306242705토
 Bobby_Vinton-Mr_Lonely-mixeco202
 저 사진, 내가 여태 본 적 없는 이상한(불안한?) 표정. 뭐지?
 사자 아가리 앞이라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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