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리 부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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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소사리 부근에서.

by 성봉수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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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쁜 외증조할아버지와 똑 닮았던 이쁜 외 왕고모 할머님.
  -어느 방학, 가마솥에 고아주던 조청과 호박엿. 뜰 지나 이 길 건너 어디쯤, 총각 불장난으로 맺은 문재 아저씨 처가 구멍가게.
 지금은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외 왕고모님 댁.

 이 동네 어귀 어디서 흙먼지 날리는 길을 한참을 더 걸어 찾았던 왕고모님 댁.
  -흙먼지 길을 한참 달린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아버지 손에 매달려 딱 한 번 찾았던 무언지 모르는 잔칫날.
 지금은 몇째였었는지 여기 어디 무렵인지도 기억할 수 없는, 대소사에 집안 어른 역할을 도맡아 주시던 아버지 고모부님.


 지금은 모두가 희미해진 기억의 길을 지나며...


 잡부 나간 주인댁 아주머님,
 폰으로 카바레 전자음악 올갠 메들리를 틀어놨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넘쳐나 사랑받는 시절에, 재생되는 곡 모두 아버지 세대가 듣던 흘러간 노래다 보니 요즘 흔치 않은 광경이다.
 순간, 내 귓속 깊은 곳에서 공명하는 추임새 "시차! 시차!"

 어머님께서 하고많은 추임새 중에 그런 의성어를 즐기셨는지는 모르겠다. 어디선가 이런 뽕짝 음악이 들려오면 늘 외치시던 "시차~시차~"
 지금 생각하니 그때 어머님 연세가 많아야 50대 초반이었을 듯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oo회"니 "ㅇㅇ회"니 하는 관급 사회단체가 있고, 그 단체들은 특정 몇몇 사람이 중복해서 주도하기 마련이다. 선거 때니 행사 때니 그런 여성단체의 선봉에 섰던 어머님 절친 변 여사님. 그 변종례 여사님께서 친구 몇 분을 끌고 개설하신 사교춤 수업. 아주머니 손에 끌려 수업 가느라 두어 번 아버님 퇴근을 맞추지 못했고, 어머님은 이실직고하셨고, 아버님께서 내막을 알게 되셨으니 집 안은 난리 났고, 그렇게 어머님의 달콤한 외도는 초장에 박살났고...
 아마 이 무렵부터 그 "시차~시차~" 추임새가 들려왔지, 싶다.


 "당신 젊어서는 퇴근하자마자 양말 갈아 신고 가다마이 빼입고 찍구 발라 여수처럼 머리 넘긴 후 향수 뿌리고 매일 밤 다다미방으로 댄스홀로 춤추러 나가시던 양반이, 카바레를 가는 것도 아니고 늙은 선생 하나 모시고 여자끼리 살 뺄 겸 운동겸 한다는데 그걸 못하게 해유..."
 아마 그때 어머님 의도대로 운동이었고, 그래서 살을 뺐더라면 평생 고생하신 소갈병도 걸리지 않으셨을 텐데... 라는 생각도 문득 들고.
 독재자 아버님 덕분에, 아버님 명을 받은 동생들 아우성에 기타 개인 교습소에서 집으로 돌아오길 번복하다가 포기하고 만 둘째 누님 생각도 나고. 

 쥔 댁 아주머니 폰에서 흘러나오는 뽕짝을 따라 "시차~ 시차~"추임새를 넣으며,
 "불쑥 나타나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이런 기억들은, 도대체 내 안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202305162943화
 손인수-해운대 엘레이지-전자올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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