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내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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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기에 내가 있었지.

by 성봉수 202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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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부 마치고 담배 물고 장화를 끌고 뒷골목을 지나오다가,
 거기 그때 벚꽃이 날리던 벤치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어머님 투석 마치시기를 기다리며 어쩌다 나와 잠시 하늘을 올려 보던...
 그해 더웠던 여름, 그날 세상 떠난 친구와 만나 마지막 담배를 먹었던...
 그리고 더 오래전 하늘이 어두웠던 시절,
 갈 곳 없는 내가 벤치에 누워 별을 헤던...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며 맛없는 담배를 먹고,
 별일 없듯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생경한 뭐가 얹듯 비친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열과한 여주 빨간 씨앗이 보인다.


 장에서 모종 두 개를 사 옥상과 대문 앞 골목 화분에 하나씩 나누어 심었는데, 옥상과 달리 착과가 되지 않아 '나팔꽃과 함께 있으면 수정이 되지 않나 보다' 짐작하고 열매 보기를 포기한 놈이다. 그런 놈이 어찌어찌 비리비리한 열매를 하나 매달고 씨까지 맺고 있었다.

 '그래, 또 하나의 우주를 열고 맺었으니 애썼다'
 어린 내가 태극당 안마당에서 처음 마주했던 그 신비로운 빨간 씨앗.
 비록 내 생에 더는 잇지 않을 연이지만, 한철이라도 마주하며 그 강렬했던 기억의 원을 풀었으니 만족하다.
 

 
 202309142318수
 김정수와 급행열차-내 마음 당신 곁으로
 그때 거칠했던 내가 oo대학 원서 넣고 돌아오던 시내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던...
 김정수 선생과 팽 당한 그룹 멤버들,
 지금은 진짜 할배들이 되었을 텐데 어찌 지내는지.

 -by,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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